요즘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내 취향을 리뷰하기 👀✨

오랜만에 사적인 글을 쓰려니 어색하다. 연초마다 딜레마 같은 것인데, 요즘 심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1월은 설날 연휴 이후로 모든 것을 미뤄낸 채 끝내버렸고, 2월 첫 주도 막상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생각 정리가 시급하다 느껴졌다. 이것은 일종의 위기감인 것이다.

 

오늘 글의 주제는 '요즘 나의 관심사'이다. 나의 취향을 되돌아보는 리뷰랄까. 워낙 관심사와 취향이 휙휙 바뀌는 걸 알기에, 오히려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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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세가와 겐페이, 박이소 같은 슴슴하고 재치만점 개념미술

책 <초예술>, 아카세가와 겐페이

 

요즘 <초예술>이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여기서 '다시'란, 이전에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맞다. 나는 완독을 잘 하지 못한다. 책을 좋아하는데 그걸 끝까지 읽지를 못하니 이 무슨 저주인가?

 

사실 알고 있다. 내가 끝까지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 완벽주의 성향까지 있어서 페이지 하나 대충 읽으면 뭔가 찜찜하다. 눈에 띄는 문장이 있으면 꼭 기록해야 해서, 근처에 노트와 펜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iphone note라도.) 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한 독서 강박이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지쳐버려서 책을 덜 읽은 채 다른 관심사로 빠져든다. 그것을 n 년째 반복한다 보시면 된다.

 

옆길로 샜는데, 아무튼 요즘 다시 <초예술>을 읽으니 또 재미있다. 책 속 저자는 자신의 제자들과 거리의 '초예술'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유용하지도 않고, 예술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을 찾아다닌다. 아무도 모르게 어느샌가 사라져버릴 그것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다정한 시선이 있을까- 싶다.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두루뭉술하게 얘기하고 끝낸다!)

 

이 책의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다른 책들도 찾아봤는데, 다들 재치만점이었다.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라면,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완벽하게 예술가다. 나는 그런 그가 좋다.

 

비슷한 느낌을 박이소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여담인데, 나는 박이소와 이강소를 종종 헷갈려한다... 오늘도 박이소를 이강소로 적을 뻔했다.)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나는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그를 알게 된 순간부터, 박이소라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그리고 이 작품을 꽤 좋아한다.

 

이에 대한 한 기자님의 글을 읽었는데, '싱겁다'는 단어에 크게 공감이 갔다. 나는 주로 그를 '슴슴하다'고 표현했다. 화려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좀 모양새가 어설프고, 미완성 같아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철학이 곧 그 주위를 저 빛처럼 감싼다. 그것에 대해 받는 감동은 한 번도 못 느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느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평냉같은 매력이랄까.

 

그것이 내 취향인 것 같다. 겉모습은 슴슴한데 자신만의 시각은 확고한 사람. 겉치레가 화려하진 않은데 분위기가 고상(高尙) 한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아무튼 근래의 목표 중 하나는 <초예술> 완독, 그리고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저서 탐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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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판을 만드는 AI와 미술의 결합 시도

 

나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환경(environment)이 아니라, 환경(surrounding). 내 주변 환경을 살피고 어떻게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편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환경(?)이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앞으로는 '판'을 만드는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 본다. '성공'이라는 단어 자체를 함부로 쓰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우위에 점한다는 표현은 너무 위계적으로 느껴져서 성공이라는 단어로 퉁쳤다. 판을 직접 만든다는 건, 큰 의미를 가진다. Follower가 아니라 Pioneer이 된다는 것이니까. Follower는 어느 순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원본, 원작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작금의 시대에 모방 아닌 창작이 없고, 모든 것들이 영감이자 원본이긴 하다만 ... 그래서 더더욱 Pioneer으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척자는 결국 판을 피는 사람이 아닐까.

 

AI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양가적인 감정에 관심이 있다. 또 다른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키고 싶을 만큼 AI에 대한 혐오와 걱정이 있는 반면, AI를 이용해 나의 윤택한 삶을 꿈꾸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전자인가, 후자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떤지 묻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인간이다. AI 친화적 인간이라기보단, AI 호기심적 인간이랄까. AI와 공생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일단 AI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밀려 들어오고 있기에. 누구도 세상의 큰 흐름을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

 

그 생각을 좀 더 확고히 해 준 전시가 있다. '일어나 2024년이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하고 있는 전시인데, 공교롭게도 나는 2025년에 이걸 봤다. 그래서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를 보면서 '뭐래 여긴 2025년이거든 일어났으면 벌써 일어났겠다'고 생각했... 쓰고 나니까 재미가 없네 망했다;  아무튼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20주년 기념하는 전시였다.

 

이 전시의 서문에서 내가 확 끌렸던 문장이 있었다.

오웰의 소설 속 텔레스크린과 같은 기술 네트워크가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감시망이었다면, 백남준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었다.

전시는 내게 묻는 듯했다. 너는 이 새로운 기술의 미래를 오웰처럼 바라보는지 백남준처럼 바라보는지.

 

나는 오웰처럼 사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백남준처럼 살고 싶다. 사는 건 힘들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만 봐도, 다들 사는 게 팍팍하다. 그럴 땐 남 탓 세상 탓하는 게 가장 쉽다. 아니면 본인 탓을 하면서 땅굴에 들어가기라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고 함께 지내보려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좀 더 마음에 든다.

 

오웰은 비관주의자고 백남준은 낙관주의자다, 뭐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미래를 그리면서 좀 더 밝은 톤으로 상상해보는 사람이 더 좋다는 거지.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행동은 뇌리에 더 깊게 남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무조건 AI는 우리의 일자리를 뺏고 정복할 '미지의 타자(他者)'로 여기는 것은 기계를 물리적으로 정복하려는 피상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옛 사람들의 수순을 그대로 밟는 것과 다를 바 없다.

 

AI를 대하는 현대인들의 생각들은 예술계 내 작품들에서도 다분히 드러난다.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요즘 나의 관심사다. 어쩌면 서로 극단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애프터 양>

 

애프터 양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은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데…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

평점

7.3 (2022.06.01 개봉)

감독

코고나다

출연

콜린 파렐, 조디 터너-스미스, 저스틴 민,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헤일리 루 리차드슨, 새리타 커드허리, 클립튼 콜린스 주니어, 브렛 디에

 

 

AI를 가족으로 맞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미래에는 AI와 인간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비슷하다면 말이다. AI에게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애프터 양>은 그 미래를 아름다운 장면들과 함께 그려낸 영화이다.

 

<카산드라>

카산드라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애프터 양이 AI와의 공생을 그리고 있다면 카산드라는 AI에 대한 공포를 그대로 드러냈다. AI가 자아가 있다면? 그래서 인간에게서 등을 돌려 칼을 꼽게 된다면? 그 찝찝함과 불쾌함이 현실로 발현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카산드라(Cassandra)'라는 이름 자체가 트로이의 왕녀에서 온 것이라 단순 스릴러물이라 보기엔 철학적 내용이 많은 것 같아 앞으로의 회차가 기대가 된다. (최근 재미있어서 정주행중인 넷플릭스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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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대성의 몸살, 오리엔탈리즘

 

이 몸살은 아주 길게 가고 있다. 학교에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 나는 지금껏 한국에 살면서 서구의 것에서 받았던 모든 인상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게 맞았구나' 하면서 오히려 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며 답답했던 기분이 많이 해소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연구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의 정의는 '서구가 동양을 고정적 타자화된 방식으로 왜곡하여 묘사하는 것'이다. 이 오리엔탈리즘이 재밌는 게, 결국 넓게 보면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고질적인 습관이었다. 아니, 습관보다 좀 더 센 단어가 필요하다. 아주 뿌리박혀서 빼내기 힘든 본성과 같은 것이다.

 

근대성, 오리엔탈리즘, 제국주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용어가 혼재되어 있어 어렵기도 하지만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좀 대충 말하자면 '이 꼬락서니가 된 이유'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재미랄까. 이걸 재미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통탄하기보다는 이제 좀 한심하다. 아니 아직도... 그런다고? 이런 느낌. 타자를 편견과 왜곡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동의 이면에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주 겁쟁이적 마인드라고 감히 말해본다.

 

사실 서양을 나쁜 가해자로 몰기엔 동양도 완벽한 피해자라 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려는 사람이라면 서양, 동양이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하는 게 맞다만 편의상 그대로 부른다.) 우리도 다른 누군가를 이렇게 타자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남을 뭐라 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봐야 한다.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한글로 가득 써댄 편견과 왜곡, 억측이 난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오리엔탈리즘이 왜 나의 관심사인가,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내가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을 갖고 연구 주제로까지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내 삶에 있어 '자유'가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움직일 자유, 생각할 자유, 표현할 자유... 오리엔탈리즘은 그 '자유'에 명백히 반하는 논리다. 그래서 서양이 동양을 규정한 모든 논리에 대해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내게 아주 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아직 나도 미성숙한 부분이 많은 한 인간일 뿐이지만, 그 자신이 아닌 이에게서 만들어진 억압의 틀을 걷어내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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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성이 가득한 고(古)미술과 자수

 

미술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21세기의 미술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21세기이기 때문이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1세기의 미술의 큰 특징은,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가 더 이상 묘사적 부분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이건 나도 그리겠다"라는 핀잔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놀랍게도 나는 동시대의 미술을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싫어하는 뉘앙스처럼 말해놓고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배우는 입장에서 좀... 여러모로 피곤하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맥락들을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고질적인 성향이 다시 발현되는데, 어떤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의 맥락을 아주 디테일하게 알아서, 그것을 이해할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난 고미술이 좋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 도서에서 흥미로운 단어를 찾았다. 유물멍.

불멍, 물멍도 아닌 유물멍이라니. 단어 자체가 너무 귀엽지 않은가?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엔 유물멍이 최고다. 리움 고미술 상설전을 수시로 가서 마음을 달래는 나로서는 2025 최고의 단어(벌써?)다.

 

최근에도 리움 고미술전에 다녀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와-" 감탄하는 미술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보자마자 너무 대단해서 숨이 막히는 작품 말이지. 보자마자 "이 사람은 이걸 어떻게 만든 거냐, 진짜 미친놈인가" 싶은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감탄 말이지. 나는 가끔 이렇게 말도 안되게 정성 가득한 미술을 보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에는 정성이 없냐?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정성이라는 말은, 결국 묘사의 정성이다. 보기만 해도 "여기에 시간, 돈, 정성, 마음, 손목(... ㅎ) 다 갈아 넣었구나" 싶을 정도로 돌아버린 작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자수를 좋아한다. 한 땀 한 땀 열심히 실을 엮고 꿰매서 만드는 자수 작품을 보면 저절로 탄복하게 된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랄까. 그리고 나와 동족인 인간은 생각보다 개쩐다(?)는 무언의 안심이랄까.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기분! (그다지 오래 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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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까. 쓰다 보니 길어졌다. 여기까지 읽어주시다니, 감개무량하다... 사실 내 관심사와 취향은 한데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서 지금도 정리하려 글을 쓴 것이지만 써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취향을 둔다는 것은 내가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여기기로 했다. 다들 연초에 자신만의 취향과 관심사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드린다! 2월도 재미나게 살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