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미술관 전시 《불멸의 화가 반 고흐》 개인적이고 솔직한 감상 5

안녕하세요, 프라이빗 도슨트 변희조입니다.

1.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불멸의 화가 반 고흐》리뷰

​최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반 고흐 회고전을 한다기에 다녀왔는데요. 저도 전시 스태프로 일해봤고, 전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수많은 노고들을 알기에 어떤 전시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긴 제 공간이잖아요. 제 솔직한 생각을 나누고자 만든 곳이니 아쉽게 느껴졌다면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항상 모든 전시에 좋은 소리만 하면 그게 더 수상하지 않아요...?)

 

📍 한가람미술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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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전시장에서 느꼈던 부분들 전시를 보고 나서 든 생각들, 그에 대한 각 리뷰들을 가감없이 적어보겠습니다. 

 

2. 관람 환경

빈센트 반 고흐.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화가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화가의 전시를 관람할 때에 제가 유심히 확인하는 부분이 있다면... 원작 여부. 사실 원작이 없었다면 방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술사와 이론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가람미술관을 자주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전시의 퀄리티 등 전반적인 전시평은 차치하고서라도 특히 아쉬운 건 매번 관람 환경이었거든요.

 

 네이버에 고흐전 검색하면 별점 후기가 바로 보일텐데 거의 대부분 이 부분 때문에 깎인 별점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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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평일에는 한산했는지 모르겠지만 주말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기 순서를 지켜서 입장하였지만, 작품의 수도 꽤 되고 사람마다 관람 시간이 다르다 보니 점점 몰리는 인파에 전시장이 너무 답답했어요. '그림값 합쳐 1조원' 이라는 어느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이 전시를 위해서는 수많은 인풋이 들어갔을 거고 그에 대한 아웃풋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대를 나눠서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좀 더 퀄리티 있는 전시 관람 환경을 조성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테이블링으로 맛집 웨이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마치 회전초밥 레일을 탄 것 같았어요. '급식줄'이라는 한 분의 별점후기도 공감이 갑니다. 주변 사람들 눈치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남자친구와 손 잡고 전시를 보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불쑥 손녀 어깨를 잡고 쭉 앞으로 밉니다. "자, 봐봐. 봤어? 됐지? 이제 가자." 그 아이는분명 그림을 봤을 것입니다. 1초 만에 돌아섰으니까요. 아이의 기억 속에 남는 게 뭘까요?

​​전시 경험은 단순히 전시장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전시를 보러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부터 모든 것이 전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큐레이션

큐레이션이 너무도 단순해서 맥이 빠지는 것도 또 하나의 아쉬운 부분입니다.

1. 네덜란드 시기(1881~1885)
2. 파리 시기(1886~1888)
3. 아를 시기(1888~1889)
4. 생레미 시기(1889~1890)
5.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

회고전이다 보니, 연대기적 전시 구성으로 한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연대기적 구성이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작가의 화풍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시간순으로 보는 게 뭐 어때서? 이럴 수 있겠습니다. 특히 저번 학기에 미술경영 수업을 들어서인지, 저는 이 큐레이션이 더더욱 민감하게 느껴졌는데요.

'크로니컬 스노비즘(chronical snobbism)'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연대기적 속물근성. 쉽게 말하면 과거가 현재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계는 계속 발전해 왔기 때문에, 과거는 이전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역사를 대할 때 특히나 경계해야 할 태도라고 배웁니다. 얼마나 조심스러우냐면, '발전'이라는 용어도 함부로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정도입니다. 과거보다 항상 현재, 미래가 발전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그 지적 허영심이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이 전시가 연대기적 속물근성을 따랐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연대기적 구성대로 관람 동선을 짰을 때, 어떤 리스크를 가지게 될까?' 이 부분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선, 시기(Period)에 따라 작품들을 자연스레 구분 짓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고흐가 파리에 있을 때와 남프랑스에 있을 때의 화풍은 분명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후, 환경에 영향을 받으니까요. 특히 고흐는 빛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남프랑스에서 그 밝은 색채와 분위기가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파리에서 그가 밝은 색채를 쓰지 않았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당신이 서울에 살든, 제주도에 살든 내 고유의 성격이나 취향은 함께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연대기로 큐레이션을 해 버리면, 자연스레 시기를 구분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고흐의 '변화'와 '발전'에 초점을 맞춘 큐레이션이 되어 버립니다.

만약, 정말 만약 새로운 고흐 원작이 발견되었다고 해 봅시다. '이건 밝고 색채가 강렬하네? 그럼 아를 시기?' 기존의 연대기적 구분을 선입견처럼 장착한 채로 작품들을 구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뭐 어떻게 큐레이션 해야 하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큐레이션에 정답이란 것도 없습니다. 좀 유치하게 말하면, '권한 있는 사람 마음대로'입니다. 큐레이션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 저렇게 해야 했다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긴 일이죠. 그러나 제 기억 속에 좋았던 회고전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렸던 장욱진 회고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 여기도 사람 겁나 많이 왔다갔거든요. 예매 가능 인원도 4매 제한을 두었고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일주일 단위로 오픈했습니다. 관람권은 2,000원 남짓입니다.

반 고흐? 성인 24,000원입니다. (국립미술관이랑 비교가 되냐? 물을 수 있겠죠. 그런데 당신이 전시 하나에 2만 원 이상의 돈을 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전시 경험에 대한 어느 정도 기대감이 안 들 수가 있을까요?) 슈퍼얼리버드, 라스트얼리버드... 긴 기간 동안 판매했습니다. 매수제한? 없습니다. 예매처? 인터파크 예매, 네이버 예매, 현장 예매... 여러 군데입니다. 현장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판매 구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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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다음과 같이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1. 첫 번째 고백 -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
장욱진의 첫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그의 청년기(10~20대) 작품들은 고전색과 향토색이 짙게 느껴지는 모티프들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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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번째 고백 -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
장욱진의 두 번째 고백, 여기서는 장욱진이 화가로서 어떠한 ‘발상’을 했고,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구성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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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 번째 고백 - 진眞.진眞.묘妙
그의 첫 불교 관련 작품인 〈진진묘〉로 시작하는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장욱진의 내면에 스며있는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 정신세계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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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 번째 고백 -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
장욱진의 네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의 1970년대 이후, 곧 노년기를 살펴본다.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 소위 말하는 전성기에서 노년기까지 연대기적 구성의 큰 틀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풀어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화가의 창작 활동을 '진지한 고백'으로 명명한 큰 전시제목 아래, 각 챕터를 ~번째 고백이라는 구절로 구분했습니다. 머물렀던 장소와 시간의 변화로 선형적인 전개를 보여주기보다는그것이 화가에게 끼친 영향에 더 주목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명명이었습니다.

​반면, 고흐 회고전의 시기 구분은 너무도 단순합니다. 파리, 아를, 생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고흐 연구에서 자주 쓰는 구분 기준이긴 하지만, 이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조르조 바사리의 생애 주기 구분법*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술사를 배울 때 꼭 등장하는 인물이 바사리입니다. 그는 미술의 발전을 선형적으로 보고, 탄생-정점-쇠퇴-부활의 생애주기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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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라는 것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작품들을 건다고 해도, 그 작품들은 한때 고흐의 현재였고 그가 그렸던 미래이기도 했다. 그 다층적인 시간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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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디오 도슨트 (유료)

그리고 도슨트. 도슨트는 큐피커 앱을 통해 유료(3,000원)로 다운로드하여 이용 가능합니다. 당연히 모든 작품을 설명할 순 없고, 대표작들만 추려서 설명해 줍니다.

 

현장 도슨트는 듣지 못해서 모르겠다만, 오디오 도슨트의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설명 말미에는 이 작품이 누구한테 있었다가 경매에 나와가지고 어느 컬렉션으로 옮겨졌고... 작품 히스토리를 들려주는데 그게 꼭 필요한가 싶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정말 궁금한 게 이 작품이 어디로 왔다 갔다 했는지일까요? 컬렉팅을 할 작품도 아닌데요? 오디오 도슨트는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에 대해 접근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결점(contact point)입니다. 도슨트에 대해 좀 더 신경 썼다면 어땠을까요.

고흐는 자화상을 정말 많이 그렸습니다. jstor라는 학술검색 사이트에 대략 검색만 해도 86점이 나옵니다. 제가 이 도슨트 각본을 썼다면 다른 자화상들과 이 자화상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을 것입니다.

 

Van Gogh's Self-Portraits

 

조금만 찾아봐도, 초상화들에 대한 분석 자료들이 인터넷에 쉽게 발견됩니다. 그 관점도 다양합니다. 미술사적, 심리적, 미술치료적... 예전에 한 교수님께서, 작가와 작품 연구를 게을리한 전시기획은 티가 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람객으로 느꼈던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설명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제목을 보았다면 관람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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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한 사마리아인'이 뭔데...?
2. 모작이라고? 원작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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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가깝게 지낸 사람이 아니라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어만 봤을 수도 있고, 아예 모를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대한 설명

이것은 어느 율법 교사가 던진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해주며 답한 것이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구약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개'로 비유하며 멸시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고귀한 신분인 성직자도, 돈 많고 명예로운 고위 관료들도 모두 지나쳤으나 사마리아인만이 가엾은 마음을 가져 타인을 도와주었다. 정말 이웃이 되어 준 이는 고귀했던 이도 아니요, 돈 많고 명예로운 이도 아니요, 그에게 자비를 베푼 '하찮다고 여겨지는' 사마리아인이었던 것이다.

 

오디오 도슨트에서는 이 설명이 너무 빈약합니다. 사마리아인이 선행을 베풀었는데 고위관료보다 더 많은 자비심을 보인다? 이게 무슨 얘기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왜 반 고흐가 <착한 사마리아인>을 모작했는가? 에 대한 설명까지 들어가면 좋았겠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이가 사마리아인일 것입니다. 나는 이 사마리아인의 얼굴이 고흐와 테오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 또한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당하지만, 남을 도와주려는 착한 마음은 여전한 사람. 그것이 그의 신념과 연결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QR코드는 자리도 차지 별로 안하는데요...

 

두 번째, 들라크루아의 <착한 사마리아인>을 모작했다면 원작이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까요? 캡션이나, 오디오 도슨트의 이미지로라도 들라크루아의 원작을 넣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고흐가 보고 그린 들라크루아의 원작 <The Good Samaritan>(1849)

좌우가 반전되어 있고, 사마리아인의 옷이 red에서 yellow로 바뀐 부분이 눈에 띕니다 다.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썼기 때문에 바꿨을까요? 다양한 설명들이 추가되었을 수 있는데 다루지 않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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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끝인사

'나는 이 전시 정말 좋았는데 왜 그러지?'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누군가의 공감을 바라고 쓴 글도 아니고 전시 주체를 비난하고자 쓴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귀한 작품도 데려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분명 좋았던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12년 만의 고흐 진품 명화전'이라는 것은 그만큼 흔치 않은 전시라는 거잖아요. 오늘 제가 적었던 생각들은 현장 관람을 하고 난 뒤에 관람객의 입장에서 충분히 느낄만한 부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고흐전... 아무래도 주말은 정말 아니에요...)

사실 현장 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야 전시를 워낙 좋아하니까 여기저기 다니지만 무슨 인천공항 탑승수속처럼 긴 줄을 보고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정말 높아졌구나' 다시 한번 느꼈거든요. 이렇게 전시를 많이 찾아주실 때 더더욱 좋은 전시 관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고흐 영화 두 편 추천드리고 갈게요! (전시 전후로 보시면 좋을 거예요 ㅎ.ㅎ)

 

▼ 러빙 빈센트 (2024) 

 

 

▼ 고흐, 영원의 문에서 (2019) 

 

 

조금 투박하게 적힌 글이니 너그럽게 보아주시길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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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라이빗 도슨트 변희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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